나는 네 거야. 영원히
어디서 보았던 영화, 거기서 나온 이 대사에 내 손 끝이 떨릴 정도로 반응했던 것을 안다. 나는 그것이 내 소유욕을 자극하는 어떠한 연유로 불필요한 감성을 동반했던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머리가 크고 보니 달리 보이는 것이 생겼다. 대사 하나로 퉁칠 수 없는 주인공과 상대의 끈끈한 결속이다.
영원히란 말도 좋고 네 것이라 말하며 부드럽게 깜빡이는 눈도 좋다. 장면 자체가 모두 사랑스럽다. 좋은 것에 좋은 것이 더해졌으니 분위기도 따뜻하다 못해 경건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저 대사가 나오기 전 나는 좀 무감했다. 여느 로맨스 영화나 다를 바 없는 개연성에 질린 것도 한몫했지만 나 자신이 '로맨스'에 큰 동요를 보이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으로 점철된 여러 미장센과 아름다운 시각효과를 이용한 장면들은 나에게 의미 있는 감상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이 영화의 시간선과 줄거리를 이해당하는 수준에서 저 대사가 나타났다. 물론 그전까지 꾸준하게 빌드업을 쌓아놓은 관계였기에 새로운 여정의 물꼬를 틔우는 이 씬으로 거진 마무리가 될 예정이었다. 따라서 모두가 이 장면만을 기다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도 그랬다.
심지어 대사조차도 별 대사가 아닌 것 같은데, 연인 사이에 그리 특별할 게 없는 대사일 텐데 그냥 꽂혀버렸다. 지금 와서야 안 거지만 다시 찾아본 영화 속 배우들의 모든 행동이 내가 왜 저 대사에 꽂혔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 그러니까 그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추운 겨울, 모닥불을 피워놓은 자리에서 주인공과 상대가 가까이 붙어 앉아있다. 어둑해진 밤에 주인공이 앉아있는 자리로부터 가까이 있던 상대역은 울먹이는 주인공의 목소리에 황급히 다가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눈높이 차이로 주인공을 올려다보는 상대에게 주인공은 떨리는 음성으로 오래도록 묵혀놓은 두려움과 자신의 죄악을 고백한다. 상대의 경멸을 각오하고 밝히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씬이고 상대역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영화의 엔딩 분기점이 될 중요한 씬이다. 어쩌면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영화의 엔딩이 새드가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여전히 울먹이며 자신의 죄를 낱낱이 밝히는 중이었고 한쪽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백이 끝날 때 눈가를 가린 손을 치우고 상대를 바라본다.
억겁 같던 몇 초의 시간이 지나고 상대는 주인공의 손을 맞잡는다. 그리고 저 대사가 나온다. 걱정할 것은 없어. 나는 네 거야, 영원히.
주인공은 큰 손에 붙들린 작은 손을 몇 초간 덜덜 떨다가 이내 안정된 듯 상대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는다. 그에 맞춰 눈이 날리는데 나는 손 끝에서 전율이 올 정도로 이 장면이 좋았다.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어렸을 적엔 이 대사에 꽂혀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여기 주인공은 불안장애를 가진 환자였다.
과호흡이 올 때면 무조건 손을 떠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는데 주인공을 오랫동안 봐오면서 그 곁을 지켰던 상대는 이 습관을 알고 있었다.
상대는 그녀가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깊은 심연이 불안을 동반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주인공의 손이 떨리기 전 상대가 미리 맞잡고 그녀를 다독인다.
괜찮다며 걱정할 것은 없다고
영원히 나는 네 것일 테니까
세월이란 무엇인가
서로를 알고 지낸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 안에서 피워낸 신뢰의 가치를 우리는 너무 가소롭게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상대는 주인공인 그녀를 오랫동안 짝사랑한 남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다른 상대를 오랫동안 짝사랑했고 이내 그녀자신의 자아마저도 잃어버린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든 상황을 알고 그 안의 아픔까지 미리 다독인 남자가 보여주는 오랫동안 지켜온 신뢰의 분위기, 따스한 눈빛, 그리고 아픔일 불안까지 잠재우는 손길에 나는 꽂힌 거였다.
내가 꽂힌 것은 저 대사 자체가 아니었다.
그 장면에 나온 대사가 어떤 것이었어도 나는 사랑했을 것이다.
가령, 우리 이제 햄버거 먹을까?
이 대사였어도 나는 손 끝이 떨리고 여운에 잠겨있었을지 모른다.
세월에 장사 없지만 세월을 버틴 관계라면 끝까지 잡아내자.
이건 내 고질적인 사람 거르기를 강하게 만드는 안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래 나를 알고 지낸 사람들이 사랑스럽다. 그게 애증이 되었건, 애정이 되었건 간에. 나와는 다른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들은 오래 알수록 질리고 새로운 맛이 없다며, 금방 다른 사람과 친밀감을 형성하고 사회관계를 쌓아간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다른 것이다. 그런 척을 할 수는 있겠지만 저들과 같아질 수는 없다. 그저 존중하는 입장이 최대일 것이다.
다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다 나 같을 것인가
그건 또 모르겠다. 근데 비슷하지 않을까.
오래 알고 지낼수록 소유와 집착이 생기는 건.
나를 오래 본 사람과 처음 본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눈에 띄게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건.
친구의 새로운 친구가 짜증 나서 일부러 그쪽을 보지 않고 대화해서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기나 엄마가 좋아하는 직장동료의 칭찬이 듣기 싫어서 엄마에게 맛있는 음식을 입에 물려주는 일 등등..
내가 유난인 것도 맞으니까.
하지만 이 나이 먹고 아직까지 그러는 건 아니다. 최대한 눌러담는다고
나를 오래 알고 있다는 건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하고 무너지고 감추는지를 안다는 뜻이고 나는 그런 존재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래서 내가 가족에게 집착하고 오래된 친구에게 집착하며 혼자 지내는 것을 기꺼워하는 이유다.
하여간 영화는 모르고 있던 나의 숨겨진 퍼즐을 찾아 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어 줄 수 있다. 그러니 다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도록 하자.
결론은 영화 보자!